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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 시 사십일 분.
서연은 늘 이 시간에 눈을 떴다. 알람 없이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습관이란 게 그런 거였다. 마라톤을 준비한 지 팔 개월째, 새벽 러닝은 이제 숨 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현관에 벗어둔 신발을 신을 때마다 서연은 잠시 멈칫하는 버릇이 생겼다. 할머니의 유품 상자에서 나온, 낡은 미투리 한 켤레. 그 짚신의 코와 바닥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맞춤 제작한 러닝화였다. 신발 장인이 "이렇게 정교하게 삭은 짚신은 처음 본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게 기억났다. 발에 넣는 순간, 마치 원래 자신의 것이었던 것처럼 꼭 맞았다.
성곽길 초입, 인적 없는 어둠 속으로 서연의 발소리가 규칙적으로 퍼졌다. 축축한 새벽 공기, 안개가 낮게 깔린 옛 성벽. 늘 다니던 길인데도 오늘따라 이상하게 조용했다. 벌레 소리도, 바람 소리도 없었다.
그리고 발밑의 감촉이 바뀌었다.
아스팔트 대신 흙. 서연은 걸음을 멈췄다. 눈앞의 성벽은 그대로였지만, 그 위로 뻗어 있던 가로등도, 저 멀리 보이던 아파트 불빛도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낮은 초가지붕들이 안개 사이로 웅크리고 있었다.
"…뭐야, 이게?"
그때, 등 뒤에서 사람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게 섰거라!"
서연은 반사적으로 뛰었다. 몸이 먼저 알았다는 듯이, 발이 알아서 땅을 박찼다. 뒤를 돌아볼 틈도 없었다. 횃불 냄새, 쇳소리, 남자들의 고함이 뒤섞여 따라붙었다.
좁은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는 순간, 누군가 서연의 팔을 낚아채 어두운 처마 밑으로 끌어당겼다. 입이 손으로 막히기 전에 비명이 새어 나오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소리 내면 둘 다 죽어."
가까이 붙은 몸에서 땀과 흙, 그리고 옅은 피 냄새가 났다. 어둠 속에서도 남자의 눈빛만은 또렷하게 보였다 — 짐승에게 쫓기는 자의 눈. 서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두려움 때문인지, 처마 밑 좁은 공간에서 밀착된 체온 때문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횃불 든 사내들이 골목 어귀를 스쳐 지나갔다. "분명 이쪽으로 뛰었는데." "잡히면 살아남지 못할 년이다, 놓치지 마라."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남자는 서연을 놓지 않았다.
숨소리가 겹쳤다. 그가 손을 떼고 나서도 한동안 둘 다 움직이지 못했다.
"당신… 누구예요?"
남자는 대답 대신 서연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따라와. 여기 있으면 둘 다 죽는다."
달빛 한 조각 없는 골목을 남자는 눈감고도 걸을 수 있다는 듯 나아갔다. 서연은 손목에 남은 그의 손자국 같은 온기를 느끼며 뒤따랐다. 문득 발밑 — 신고 있던 신발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러닝화가 아니었다. 헐거운 짚신. 발가락 사이로 흙이 밟혔다.
'언제 신발이…'
그 순간 골목 끝에서 창을 든 사내가 튀어나왔다. 남자가 서연을 밀치고 창을 막아섰다. 둔탁한 소리, 신음, 그리고 붉은 것이 어둠 속에 흩뿌려졌다.
"뛰어, 지금!"
서연은 그 말에 따라 다시 달렸다. 뒤에서 들리는 비명과 쇳소리를 뒤로하고, 정신없이 성벽을 따라 달리다 발을 헛디뎠다. 몸이 허공에 붕 뜨는 감각과 함께, 눈앞이 새하얗게 흐려졌다.
*
눈을 떴을 때, 서연은 익숙한 성곽길 아스팔트 위에 주저앉아 있었다. 무릎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겨우 십일 분이 지나 있었다.
숨을 몰아쉬며 신발을 내려다봤다. 러닝화였다. 발가락 사이의 흙도, 짚신도 없었다.
다만 —
신발 밑창에, 마르지 않은 핏자국 한 방울이 선명하게 묻어 있었다.
---
(다음 화에서 계속됩니다....)
https://tota-books.tistory.com/m/74
[중편] 축시(丑時)의 러너 : 제2화, 유품 상자
무릎의 상처는 진짜였다. 소독약이 스며들 때의 따가움도, 밴드를 붙이는 손끝의 감촉도 분명 현실이었다. 하지만 신발 밑창에 말라붙은 핏자국은, 아무리 닦아내려 해도 섬유 속까지 배어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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