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소설

[중편] 걸음을 빌려드립니다 : 제8화 넘지 못한 벽

도타북스 2026. 7. 16.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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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 넘지 못한 벽

들것이 응급실 안으로 사라졌다. 최덕수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 앞에 무릎을 꿇은 채였다.

준영은 조심스레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몇 걸음 못 가 몸이 그대로 멈췄다. 마치 투명한 유리에 부딪힌 것처럼,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저도… 안 되네요." 준영이 손을 뻗어봤지만 허공을 만지는 느낌뿐이었다.

소은도 다가와 같은 벽을 확인했다.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봐요. 우리도, 아버지도."

최덕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얼굴은 삼십 년 가까이 늙지 않은 듯한 젊은 모습이었지만, 두 눈만은 마치 백 년은 산 사람처럼 지쳐 있었다.

"매번 여기예요." 최덕수가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마치 누군가 듣고 있다는 걸 아는 것처럼. "이 순간만은, 아무리 해도 못 넘어가.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준영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 차는 사람을 구하러 데려간다. 하지만 이미 결정된 과거는, 절대 바꿀 수 없다.* 최덕수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삼십 년 가까이 같은 실패를 반복해서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르신은 아셨을까요." 소은이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이 순간을 바꿀 수 없다는 걸요."

"모르셨을 것 같아요." 준영이 낮게 답했다. "아셨다면, 그렇게 오래 이 순간으로 돌아오지 않으셨을 거예요."

그때, 최덕수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놀랍게도 그의 시선이 정확히 준영을 향했다.

"…거기 누구요?"

준영은 숨이 멎었다. 최덕수가, 자신들을 보고 있었다.

"안 보이던 사람들인데." 최덕수가 천천히 일어섰다. "당신들도 이 차를 타고 온 겁니까?"

준영은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지금 눈앞의 이 사람에게 미래를 말해도 되는 걸까. 자신이 그 사고의 당사자라는 걸, 밝혀도 되는 걸까.

"저는… 이 차의 지금 주인입니다." 준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르신은, 오랫동안 이 순간을 찾아오고 계셨더라고요."

최덕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지금 주인이라니. 그럼 나는—"

"어르신." 소은이 앞으로 나섰다. 목소리가 떨렸다. "저 소은이에요. 아버지 딸이요."

최덕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소은을 바라봤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소은이가… 이렇게 컸어?"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몇 년이나 지난 거야, 대체."

"아버지." 소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이제 그만 오세요. 여기, 더 이상 안 와도 돼요."

"안 돼. 아직 저 안에 있는 아이를—"

"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아버지." 소은이 그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 아이는… 살아남았어요. 다리를 다쳤지만, 어른이 됐어요. 지금, 여기 서 있어요."

최덕수의 시선이 천천히 준영에게로 옮겨갔다.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그를 살폈다.

"…설마."

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접니다. 그날, 그 병원에 실려 갔던 아이요."

최덕수의 다리가 휘청였다.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한참을 소리 없이 흐느꼈다.

"미안하다… 그때 조금만 더 빨랐으면—"

"괜찮았어요." 준영이 다가가려 했지만 여전히 벽에 막혔다. 그래도 목소리만은 또렷이 전했다. "어르신 덕분에, 저는 지금까지 잘 살아왔어요. 그리고 이 차 덕분에, 저는 다른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어요.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닐까요."

최덕수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벽 너머의 준영과 소은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이 차는," 한참 만에 그가 입을 열었다. "실패를 되돌리라고 있는 게 아니었어. 나는… 그걸 몰랐던 거야. 삼십 년을 헛되이."

"헛되지 않았어요." 소은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구한 사람들, 저희가 다 봤어요. 강아지도, 길 잃은 아이도, 죽으려던 사람도."

최덕수의 얼굴에 처음으로 옅은 미소가 스쳤다. 그리고 그는 품에서 낡은 열쇠 하나를 꺼내 보였다. 지금 준영의 주머니에 있는 것과 똑같은 열쇠였다.

"이 열쇠, 원래는—" 최덕수가 말을 이으려는 순간, 주변 풍경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간이에요!" 소은이 소리쳤다. "돌아가야 해요!"

"어르신!" 준영이 다급히 외쳤다. "돌아오는 방법이 있나요? 지금, 어디 계신 거예요, 진짜로는!"

최덕수의 모습이 빛과 함께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외친 말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카센터 지하에… 시동을 걸지 못한 차가 한 대 더—"

그 말을 끝으로, 병원 복도도, 최덕수도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

눈을 떴을 때, 준영과 소은은 다시 그 낡은 창고 안이었다. 차의 시동은 꺼져 있었고, 사방은 고요했다.

"카센터 지하…" 소은이 되뇌었다. "여기 지하가 있었어요?"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봤다. 방금 겪은 일이 꿈이 아니라는 걸, 둘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짧은 병원 복도에서의 포옹과, 이마를 맞댄 순간도, 결코 지워지지 않을 기억이 되어 있었다.

"소은 씨." 준영이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찾아봐요, 지하."

소은은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작업대를 옆으로 밀어냈다. 그 아래, 먼지 쌓인 나무 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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