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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삼백만 원짜리 우연
준영은 여덟 살 때 이후로, 단 한 번도 '평범하게' 걸어본 적이 없었다.
빗길 교통사고. 부모님은 무사했고 준영만 왼쪽 다리에 흔적을 남겼다. 수술은 세 번, 재활은 이 년 넘게 이어졌지만 걸음걸이는 끝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남들은 "티도 안 나"라고 했지만, 준영은 알았다. 계단을 오를 때, 오래 서 있을 때, 비 오는 날 유난히 뻐근해지는 그 다리를.
그 다리는 그를 조금씩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체육 시간에 열외를 자처했고, 소개팅 자리에선 항상 먼저 앉아 있는 쪽을 택했다. 회사에서도 회식 자리 이동이 잦으면 먼저 핑계를 대고 빠졌다. 서른둘, 백수 십일 개월 차. 준영의 인생은 다리보다 먼저 절뚝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중고차 사이트에서 발견한 매물은 이상하리만치 쌌다. 2015년식, 주행거리 정상, 사고 이력 없음. 시세는 아무리 낮게 잡아도 팔백은 받아야 할 차가 삼백만 원에 올라와 있었다.
"사장님, 이거… 뭔가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허름한 중고차 매매소, 노인은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문제는 없어. 그냥… 이 차, 가끔 지 맘대로 갈 데를 정해."
준영은 그 말을 농담으로 들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절뚝이는 걸음으로 운전석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사흘 뒤 밤, 준영은 편의점 앞에 차를 세워두고 담배를 태우다 문득 핸들을 잡았다. 라이터를 찾으려 글로브박스를 뒤졌을 뿐인데—
눈을 떴을 때 그는 낯선 골목 한복판에 서 있었다. 정확히는, 차 안에 앉은 채로. 창밖은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동네였다. 가로등도, 간판도, 공기 냄새도 달랐다.
"…뭐야, 이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준영은 반사적으로 문을 벌컥 열고 차에서 뛰쳐나갔다.
**뛰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건 세 걸음쯤 지나서였다. 뛰었다. 절뚝이지 않고. 왼쪽 다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오른쪽 다리와 똑같은 리듬으로 땅을 밟고 있었다.
준영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숨을 몰아쉬며 자기 다리를 내려다봤다. 아무 이상 없어 보였다. 아니, 이상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 낯설 정도로 가볍고 힘 있게 느껴졌다. 이십 년 넘게 함께해온 무게감이 통째로 사라진 것 같았다.
"이게…"
시험 삼아 제자리에서 몇 번 뛰어봤다. 계단도 없는 골목인데 괜히 옆에 있던 낮은 턱을 성큼 뛰어넘어 봤다. 몸이, 그냥,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그 순간 골목 반대편에서 다급하게 뛰어오던 여자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악!"
두 사람 다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여자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봉투를 놓쳤고, 안에서 약봉지 여러 개가 쏟아져 나왔다.
준영은 반사적으로 몸을 낮춰 약봉지를 주워 담았다. 무릎을 굽히고, 일어서고, 다시 숙이는 동작이 이렇게 자연스러웠던 적이 없었다는 걸 낯선 여자 앞에서 새삼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여자는 대답 없이 준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놀란 표정이었는데, 부딪혀서 놀란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차…" 여자가 준영의 뒤에 서 있는 자동차를 가리켰다. "이 차, 어디서 났어요?"
"네? 그냥, 중고로…"
"번호판 확인해봐도 돼요?"
준영은 당황했다. 그러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두 걸음,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고 있는 자신의 다리에 계속 신경이 쏠렸다.
"저기요, 저 지금… 제가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는 상황이라."
"저도 그래요." 여자가 낮게 말했다. "저도 지금, 제가 왜 여기 서 있었는지 모르겠거든요."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가로등 불빛 아래, 이상한 침묵이 흘렀다.
여자의 이름은 소은이었다. 그녀는 명함도, 자기소개도 없이 그저 이렇게만 말하고 사라졌다.
"그 차, 조심하세요. 아무 데나 함부로 세워두지 마시고요."
준영은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소은이 사라진 골목 저편을 바라보다가, 다시 자기 다리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마치 몸이 원래대로 돌아갈까 봐 두려운 사람처럼 조심스레 걸어봤다.
여전히, 멀쩡했다.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원래 있던 편의점 근처로 돌아왔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 왼쪽 다리에 익숙한 뻐근함이 훅 돌아왔다. 준영은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집에 도착해 시동을 끄고도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조수석에 놓인 매매 계약서를 다시 펼쳐 봤다. 전 소유자란에 적힌 이름.
**최덕수.**
준영은 핸드폰을 꺼내 그 이름을 검색해봤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세상에 없었던 사람처럼.
그날 밤 준영은 잠들지 못했다. 이십사 년 만에 처음으로, 절뚝이지 않고 걸어본 그 몇 분을 몇 번이고 되새기면서.
삼백만 원짜리 중고차 한 대가, 그의 멈춰 있던 인생 — 그리고 그의 다리에, 처음으로 균열을 낸 순간이었다.
(다음화에 계속......)
https://tota-books.tistory.com/m/64
[중편소설] 걸음을 빌려드립니다 : 제2화
# 2화. 패턴을 찾습니다다음 날 아침, 준영은 눈을 뜨자마자 왼쪽 다리부터 확인했다. 뻐근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꿈이었나…"혼잣말을 하며 몸을 일으키는데 절뚝임이 그대로였다. 어젯밤
tota-book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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