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소설

[단편] 균열 : 제2부. 백지수표

도타북스 2026. 6. 1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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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전화

 

엄지가 전송 버튼 위에 올라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진동.

화면이 뒤집혔다. 수신 표시. 여보.

나는 멈췄다. 세 개의 창이 닫혔다. 손이 저절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 나야."

목소리가 이상했다. 아내는 원래 조용한 사람이었다. 분식점 카운터에서도, 딸아이를 재울 때도, 싸움 중에도 — 항상 목소리가 일정했다. 그게 그녀였다. 어릴 적 동창이었고, 직장 생활 막 시작했을 무렵 지하상가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 겨울 끝 무렵이었다. 그녀는 나를 알아봤고, 나는 그녀를 알아봤다. 그로부터 이 년 뒤 우리는 결혼했다. 조심스럽고 배려하는 사람. 목소리가 흔들린 적이 없었다.

지금 전화기 너머에서 그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누가… 왔어."

"누가?"

"모르는 사람이야. 양복 입은 남자 둘. 가게 문 열자마자 들어왔어. 아무 말 없이 봉투 하나 놓고 갔어. 열어봤더니……"

아내가 말을 멈췄다.

"백지수표야."

 

백지수표.

나는 화장실 벽에 등을 붙였다. 딸아이는 유치원에 있다. 오늘은 오후 두 시 하원이다. 지금 몇 시지. 열한 시 사십 분.

"가게 문 잠가. 아무도 들이지 마."

"여보, 이게 무슨——"

"지금 갈게."

나는 전화를 끊었다.


7. 달리기

 

지하철은 느렸다. 택시를 잡았다. 기사가 라디오를 틀고 있었다. 뉴스였다. 수도권 신축 아파트 붕괴 사고, 사상자 발생, 원인 조사 중.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민철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수의 비명이 먼지 속으로 사라지던 것이. 재훈이 내 팔을 붙잡던 힘이.

진실이 중요하다.

그 말이 머릿속에서 반복됐다. 어디서 나온 문장인지 몰랐다. 그냥 그랬다. 진실이 중요하다. 백지수표보다. 협박보다. 무서운 것보다.

 

아내의 가게는 역 근처 골목 지하상가 안에 있었다. 우리가 다시 만났던 바로 그 상가였다. 십 년 전 그녀가 코트 깃을 세우고 걸어오던 곳. 지금은 그녀의 분식집이 거기 있었다. 떡볶이 냄새, 낡은 간판, 입구 한쪽에 딸아이 그림이 붙어 있는 가게.

문을 열었다. 아내가 카운터 뒤에 앉아 있었다. 손이 무릎 위에서 모아져 있었다. 봉투는 테이블 위에 있었다.

나는 아내의 맞은편에 앉았다.

 

"괜찮아?"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빨개져 있었다.

"딸 오늘 이모한테 부탁해. 하원 후에. 오늘 하루만."

아내가 말없이 폰을 들었다.

나는 봉투를 열었다. 백지수표였다. 수표 아래에 종이가 한 장 더 있었다. 인쇄된 문장 하나.

 

「가족을 생각하십시오.」

나는 봉투를 닫았다. 수표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어디 가?"

"경찰서."

아내가 일어섰다.

"같이 갈게."

"아니."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여기 있어. 가게 문 열고 평소대로 있어. 이상한 사람 오면 바로 전화해."

아내가 입술을 눌렀다. 그러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나는 가게를 나섰다.


8. 경찰서

 

코인 로커에서 박스를 꺼냈다. 묵직했다. 지하철역 물품보관함 앞에서 잠깐 멈췄다. 이걸 들고 가는 게 맞는 건지. 혼자 가는 게 맞는 건지.

민철이 생각났다. 지수가 생각났다. 두 다리, 왼팔.

걸었다.

 

경찰서 민원실은 1층이었다. 접수 데스크에 경사 한 명이 서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박스를 내려놓았다.

"신고하러 왔습니다. 건설사 부실시공 관련 내부 문건입니다. 협박도 받고 있고요."

경사가 고개를 들었다. 나를 봤다. 박스를 봤다.

"잠깐 기다리세요."

 

그가 안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의자에 앉았다. 창밖으로 도로가 보였다. 차들이 지나갔다. 평범한 오후였다.

오 분쯤 지났을까. 형사 한 명이 나왔다. 명함을 건넸다. 나는 받아서 주머니에 넣었다. 일어섰다.

진술서를 쓰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박스는 증거물로 임시 보관됐다. 수표도 제출했다. 형사가 말했다. 일단 귀가하시고 연락 기다리세요. 신변 보호 요청도 가능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밀었다. 바깥 공기가 들어왔다. 계단을 내려갔다. 인도로 나섰다.

핸드폰을 꺼냈다. 아내에게 전화하려고.


9. 충돌

 

그 순간이었다.

소리가 먼저였다. 엔진음이 아니라,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 찰나였다. 고개를 드는 것과 무언가 하얗고 거대한 것이 시야를 채우는 것이 동시였다.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쾅——.

몸이 어딘가로 날아갔다. 통증은 없었다. 통증을 느낄 틈이 없었다. 아스팔트가 어깨를 쳤다. 하늘이 보였다. 흰 구름 하나. 이상하게 선명했다.

아내. 딸.

그다음은 없었다.

· · ·

10. 기계음

 

삐——.

삐——.

일정했다. 반복됐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듣고 있다는 걸 알았다. 눈은 열리지 않았다.

줄들이 보였다. 눈을 뜨지 않았는데 보였다. 투명한 관, 얇은 전선, 무언가 연결된 것들. 손등이 무거웠다. 무언가 꽂혀 있는 것 같았다.

냄새가 났다. 소독약. 차가운 공기. 침대가 딱딱했다.

중환자실인가.

 

누군가 곁에 있는 것 같았다. 기척이 있었다. 숨소리인지 의료 기기 소리인지 구분이 안 됐다.

박스가 생각났다. 형사 명함이 생각났다. 주머니에 넣었었는데. 지금 내 주머니는 어디 있지.

아내가 생각났다. 전화하려고 했었다.

삐——.

삐——.

 

눈꺼풀이 무거웠다. 열려고 하면 다시 내려왔다. 빛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형광등인 것 같았다. 하얀 빛.

조금만 더 있으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만 더.

눈을 감았다.
기계음은 멈추지 않았다.
삐——, 삐——, 삐——.
누군가 내 손을 잡은 것 같았다.
따뜻했다.

 

 

● 다음편 : https://tota-books.tistory.com/59

 

[단편] 균열 : 제3부. 손을 잡은 사람

11. 깨어남 삐——.삐——.소리가 먼저였다. 다음은 빛이었다. 형광등이 천장에 붙어 있었다.하얗고 차가웠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세상이 흐릿하게 윤곽을 잡았다.손등이 무거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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