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삐——.
삐——.
소리가 먼저였다. 다음은 빛이었다. 형광등이 천장에 붙어 있었다.
하얗고 차가웠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세상이 흐릿하게 윤곽을 잡았다.
손등이 무거웠다.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다. 왼쪽 검지에 산소포화도 센서가 물려 있었다. 침대 난간이 올라가 있었다. 천장에 형광등이 두 줄. 커튼이 쳐져 있었다. 회색 커튼.
중환자실이었다.
고개를 돌렸다. 오른쪽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내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내가 아니었다.
재훈이었다.
"야."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쉰 것 같았다. 재훈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빨개져 있었다. 눈 밑이 거무튀튀했다. 며칠은 못 잔 얼굴이었다.
"…깨어났네."
"며칠이야?"
"사흘."
사흘. 나는 천장을 바라봤다. 딸아이. 아내. 박스. 형사.
"아내는?"
"지금 복도에서 자고 있어. 어젯밤에 겨우 재웠다. 사흘 동안 거의 안 잤어."
나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경찰서에 제출한 서류 — 형사한테 연락해야 해. 명함을 줬는데 내 주머니에——"
"알아." 재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게 문제야."
나는 재훈을 바라봤다. 재훈이 내 손을 놓았다.
의자를 당겨 바짝 붙이고 앉았다. 목소리를 낮췄다.
"네가 경찰서 들어가는 거 봤어. 미행하고 있었거든. 건설사 쪽 사람들이.
나도 몰래 따라갔었고. 네가 진술하고 나오는 순간 그 차가——" 재훈이 입술을 눌렀다. "고의야. 사고가 아니야."
알고 있었다. 어렴풋이.
"서류는?"
재훈이 잠깐 망설였다.
"경찰서에서 분실됐어."
분실.
"임시 보관 처리됐는데 다음 날 아침에 담당 형사가 확인하니까 박스가 없었대. CCTV도 해당 시간대만 오류가 났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장의 형광등을 바라봤다. 경찰서 안에서. 증거물이. 사라졌다.
"그 형사 — 믿을 수 있어?"
재훈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재훈이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네가 병원 실려 오기 직전에 찍은 거야. 현장에서." 재훈이 종이를 펼쳤다.
스마트폰으로 찍어 출력한 사진이었다. 충돌 현장. 차 번호판이 찍혀 있었다.
"번호판 조회했어. 렌터카야. 근데 렌터카 계약자 이름을 어떻게 알아냈냐면——"
재훈이 손가락으로 사진 한 귀퉁이를 짚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화질이 거칠었다. 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찍혀 있었다.
흔들렸지만 얼굴이 보였다.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담당 형사였다.
나는 숨을 참았다. 뭔가가 위장에서 치솟는 느낌이었다.
형광등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사실 형광등은 소리가 없다. 머릿속이 울리는 거였다.
"건설사랑 연결돼 있어." 재훈이 말했다.
"그 형사, 이름이 박승호야. 해당 건설사 감리 담당 전직 직원이었어.
퇴직 후 경찰 특채로 들어왔고. 연결고리는 더 있어."
"어디까지 올라가?"
재훈이 종이를 다시 접었다.
"구청까지."
재훈이 또 다른 종이를 꺼냈다. 이번엔 더 두꺼웠다. 여러 장이었다.
"나도 손 놓고 있지 않았어." 재훈이 조용히 말했다.
"네가 박스 들고 달아났을 때, 나는 현장에 남아 있었거든. 먼지 속에서 뭔가 더 있을 것 같아서."
재훈이 종이를 건넸다. 나는 손을 뻗었다. 링거 줄이 당겼다. 천천히 펼쳤다.
사진들이었다. 재훈이 찍은 것들. 건물 내부 구조. 철근이 드러난 단면.
그리고 — 벽 한쪽에 스프레이로 휘갈겨 쓴 숫자들. 날짜처럼 보였다.
그 아래 이니셜.
「J.H — 확인 완료. 계획대로.」
"J.H가 누군지 알아?"
재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현호. 이번 아파트 시공 현장 소장이야.
그리고——" 재훈이 잠깐 멈췄다. "구청 건축과장이랑 대학 동기야. 같은 과."
나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부실시공. 내부 묵인. 감리 무력화. 증거 인멸. 그리고 경찰 안에 심어진 사람.
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설계된 것이었다.
균열도, 붕괴도, 내가 서류를 들고 뛰어나온 것도, 차에 치인 것도 — 누군가에게는 계산 안에 있는 일이었다.
민철이 생각났다. 지수가 생각났다.
"우리한테 남은 게 뭐야?"
재훈이 대답 대신 마지막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USB 드라이브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원본 파일이야. 박스 열기 전에 전부 스캔해뒀어. 클라우드에도 올려놨고.
접속 계정은 나만 알아. 아직 살아 있는 증거야."
아직 살아 있는.
그때 커튼이 열렸다.
간호사가 아니었다. 흰 가운을 입고 있었지만 — 손에 청진기가 없었다.
나이는 오십 대 초반. 반듯한 인상. 눈이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이상했다.
재훈이 USB를 등 뒤로 감췄다.
남자가 커튼을 닫았다. 병실 안이 좁아지는 것 같았다.
"많이 다치셨네요."
목소리가 낮고 부드러웠다. 위협적인 말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누구십니까."
"저요?" 남자가 침대 발치에 서서 나를 내려다봤다.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누가 보냈어요."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눈은 웃지 않았다.
"선택지를 드리러 왔습니다. 두 가지예요.
하나는 — 지금 가진 것 전부를 내려놓고, 좋은 조건으로 조용히 마무리하는 것.
치료비, 보상금, 재훈 씨 포함해서 전부. 민철 씨, 지수 씨도요."
"두 번째는요."
남자가 잠깐 침묵했다.
"두 번째는 — 제가 이 병실을 나간 다음에 어떤 일이 생겨도 저희는 모릅니다."
삐——. 삐——.
기계음이 계속 울렸다. 나는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가 나를 바라봤다. 재훈이 숨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연락처 주세요."
남자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생각해보겠습니다."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나는 받았다. 남자가 커튼을 열고 나갔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재훈이 속삭였다. "뭐 하는 거야?"
나는 명함을 뒤집었다. 그리고 링거 바늘이 꽂힌 손으로 천천히 재훈의 팔을 잡았다.
"우리가 먼저 칠 거야."
● 다음편 : https://tota-books.tistory.com/61
[단편] 균열 : 제4부(완결). 우리가 먼저 친다
16. 명함 재훈이 속삭였다. "뭐 하는 거야, 지금?"나는 명함을 천천히 뒤집었다. 앞면엔 이름과 직함이 적혀 있었다.뒷면엔 아무것도 없었다. 깨끗한 흰 종이. 하지만 빛에 비추면 — 희미하게 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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