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봤을 때, 나는 웃었다.
천장 모서리에서 바닥 쪽으로 비스듬히 내려오는 가는 선. 갓 분양받은 아파트의 하얀 벽 위에 누군가 연필로 슥 그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서른두 평, 23층. 수도권 외곽이었지만 한강이 흐릿하게 보이는 뷰. 나는 그 균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신축엔 으레 이런 게 있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았다. 콘크리트가 자리 잡히면서 생기는 수축 균열. 대형 건설사인데 설마.
친구들을 불렀다. 재훈, 소영, 민철, 그리고 지수. 다섯 명이 빈 집에 모여 삼겹살을 구울 계획이었다. 아직 가구도 없는 텅 빈 거실에 앉아 배달 치킨을 뜯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도시의 야경이 그럴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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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이 화장실 쪽으로 먼저 가 있었다. 민철과 지수는 안방 쪽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재훈과 함께 베란다에 기대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재훈이 별안간 나를 향해 걸어왔다.
"야, 저기 저 벽 좀 봐. 아까보다 넓어진 것 같지 않냐?"
내가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쿠쿵——.
소리가 아니었다. 진동이었다. 발바닥 아래에서 올라오는 묵직한 떨림이 척추를 타고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안방 쪽 바닥이 통째로 꺼지는 것을. 콘크리트 슬래브가 마치 젖은 종이처럼 힘없이 아래로 무너지는 것을. 먼지가 솟구쳤다. 민철이 지르는 비명이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재훈의 팔을 붙잡았다. 재훈이 나를 붙잡았다. 우리는 서로를 벽 쪽으로 밀어붙이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안방은 없었다. 민철도, 지수도 없었다.
계단은 반대편 끝에 있었다. 무너진 쪽이 아닌 방향으로. 우리는 벽을 짚으며 걸었다. 발을 뗄 때마다 바닥이 버텨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소영이 화장실에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그냥 달렸다.
아파트 밖으로 나왔을 때, 단지 뒤편 골목에 트럭 한 대가 서 있었다. 작업복 차림의 남자 둘이 박스를 싣고 있었다. 평범한 이사 장면처럼 보였지만 뭔가 이상했다. 새벽 두 시였다. 그리고 방금 이 건물의 일부가 무너졌는데, 그들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박스 하나의 뚜껑이 열려 있었다. 서류들이었다. 도면, 구조 계산서, 그리고 붉은 도장이 찍힌 내부 보고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B동 슬래브 하중 초과 — 내부 검토의견서 (외부 유출 금지)」
남자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그 박스를 통째로 들고 뛰었다.
다음 날 오전 열 시. 내 폰으로 문자가 왔다. 발신번호 없음.
「반납하면 없던 일로 해드립니다. 48시간.」
오후 두 시엔 내 차 앞 유리에 종이가 꽂혀 있었다. 아무 말도 적혀 있지 않았다. 대신 어젯밤 골목에서 내가 박스를 들고 뛰는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화질이 선명했다.
나는 서류를 펼쳤다. 밤새 읽었다. 구조 엔지니어의 내부 검토 의견에는 명백한 문장이 있었다. 슬래브 두께 기준 미달. 철근 배근 간격 부적합. 설계 하중의 73% 수준으로 시공됨. 그리고 팀장의 사인이 옆에 찍혀 있었다. 승인.
민철과 지수는 지금 중환자실이었다. 민철은 두 다리, 지수는 왼팔. 살아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지금 편의점 화장실 안에 있다. 박스는 코인 로커에 맡겨뒀다. 재훈은 모르는 척하라고 했다. 소영은 울기만 했다. 내 손에는 폰이 들려 있다.
화면에는 세 개의 창이 열려 있다.
첫 번째, 한 방송국 제보 이메일 주소. 두 번째, 국토교통부 민원 신고 페이지. 세 번째, 그 건설사 대표의 개인 번호. 어디선가 구했다.
언론은 빠르다. 하지만 나를 지켜줄 수 없다. 정부는 느리다. 하지만 기록은 남는다. 건설사는 돈이 많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조용히 살 수 있다면, 민철과 지수를 위한 보상도 받아낼 수 있다.
바깥에서 누군가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세 번.
천천히, 일정하게.
나는 전송 버튼 위에 엄지를 올렸다. 어느 창에 올렸는지는, 아직 모른다.
● 다음편 : https://tota-books.tistory.com/57
[단편] 균열 : 제2부. 백지수표
6. 전화 엄지가 전송 버튼 위에 올라간 바로 그 순간이었다.진동.화면이 뒤집혔다. 수신 표시. 여보.나는 멈췄다. 세 개의 창이 닫혔다. 손이 저절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 나야."목소리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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